역사의 시작은 현재다

도서명 역사의 시작은 현재다
저자명 이병철
비고 인문, 역사|288쪽|변형국판|2017년 4월 3일
가격 14,000 원


도서소개

격랑의 시대일수록
역사를 찾는 이유


역사를 왜 배워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알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기 위해, 과거의 일들로부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와 미래의 전망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긴 역사적 안목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그런데 과연 실제로 그러고 있는가? 오히려 지금 사회는 역사에 대한 표피적 인식과 단기적 사고가 횡행하고 있다. 역사에 대해서도 백과사전적 지식만이 넘쳐나고, ‘역사의 교훈’이라는 것도 족집게 수업 식으로 정리된다. 그렇게 ‘역사를 보는 눈’ 없이 빨리 정답만을 뽑아내려는 태도의 결과가 위기가 만성적으로 발생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역사의 시작은 현재다』는 반대로 느리고 장기적인 사고를 강조한다. “위기의 핵심인 ‘단기’의 문제를 ‘장기’로써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힘은 역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은 공식처럼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시대의 흐름을 더듬는 수고로운 작업 속에서 발견된다. 이 책은 그런 작업에 사용되는 역사의 기초 개념과 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며, 그런 작업을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독자를 인도한다.

시대구분, 주관과 객관, 기록과 기억…
역사의 중요한 주제를 들여다보다

총 10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역사란 무엇이 아닌가?’라는 반문을 시작으로 역사의 기초를 다져나간다. 역사에서 과거·현재·미래는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역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역사에서 시대구분은 왜 필요하며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가? 현대사는 어디서부터 현대로 보는가? 사료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등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역사의 개념을 정립할 수 있게 해준다.
그중 역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역사는 주관적일까 객관적인 걸까? 이 질문은 역사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부분 중 하나다. 과거를 왜곡 없이 기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한 듯하면서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이 책은 주관성과 객관성 모두에 열린 자세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해준다.

객관성과 주관성에 모두 열려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극단적인 객관성을 1로─답이 오로지 하나인─표기하고, 극단적인 주관성을 무한대(∞)로 나타낸다면 우리는 1과 ∞ 사이에 있다. 2도 1에 비하면 주관적이다. 물론 100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다. 그렇다면 1과 ∞의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를 추구하는 것일까? 2~10, 또는 2~100 정도일까? 구체적인 숫자보다는 우리의 객관성이 상대적일뿐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가능한 한 더 객관적이고자 하는 자세, 그러면서도 주관성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의미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추는 게 중요할 것이다. -220~221쪽

과거에서 현재로,
‘역사를 보는 눈’의 변화

이 책은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의 관계에서 미래의 목적을 그려낼 줄 아는 역사적 안목을 강조한다. 그것을 기르는 것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며,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역사학에서 이제까지 과거와 현재가 가지는 의미가 변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그런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19세기에 태동한 근대 역사학은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역사라고 보았다. 여기서 개인의 주관이나 해석은 개입되지 않으며, 역사는 철저히 객관적이어야 한다. 이때의 역사는 과거가 현재에게(또는 사실이 역사가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객관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역사를 보는 관점도 바뀐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격변은 역사가들에게 이 전쟁을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또한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19세기의 낙관적 신뢰가 붕괴하고, 사료 자체에도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 인식되면서, 과거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다. 이제 역사는 사실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가 되었다. 이때의 역사는 현재가 과거에게 말하는 것이다.
19세기의 역사학이 객관성과 과거를, 20세기 전반의 역사학이 주관성과 현재를 강조했다면,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두 가지를 종합하는 모습이 나온다. 객관성이 다시 추구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역사학이 추구한 객관성이 자연과학적 객관성이라면 이때의 객관성은 사회과학적 객관성이었다. 이는 정치사 중심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사로 역사의 중심축이 바뀌는 흐름과도 관계가 있었다. 방대한 사회경제적 통계자료를 통해 신뢰할 만한 객관성을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사가는 무엇을 연구하고 알아낼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과거의 사실과 자료가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래서 역사는 현재와 현재가 택한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이다.
근래의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여기서 한층 더 현재와 주관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사실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사료란 당시에 누가 어떻게 기록했는지에 상관없이 현재의 역사가에 의해 얼마든지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극단적인 주관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지배적 담론을 넘어서 미시사와 민중사로 대표되는 창의적이고 신선한 역사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역사학의 관점이 변하고 중심이 달라지는 과정 속에서 역사 이해가 깊어져왔다는 것이다. 정치사에서 사회경제사로, 거대사에서 미시사로 역사의 지평이 차츰 확대되었다. 이런 흐름을 좇아가면서 독자들은 역사의 발전을 실감하고, 역사를 보는 눈을 확장시킬 수 있다.

역사의 시작은 현재,
역사의 목표는 미래다

이 책은 카의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문장을 재해석하며 역사 이해에서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유명한 문장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확히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내 번역본은 ‘그의(his)’라는 수식어를 빼고 있지만, 이 단어는 ‘역사가’(현재)와 ‘사실’(사실)이 대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다. 역사가는 자신이 선택한 사실과 상호작용하고, 현재는 자신이 선택한 과거와 대화한다. 둘 사이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루어지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주도권은 역사가와 현재에 있다. 그렇기에 ‘역사의 시작은 현재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과거의 일에 대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라고 묻는다. 그렇게 묻는 이유는 과거의 일을 통해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왜 이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는 ‘이 일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있다. 예컨대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사대주의와 외세에 대한 의존에서 찾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나라를 세우기를 바라는 목적이 반영된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과거를 왜 봐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작업이 미래의 전망으로 이어질 때 역사라는 대화가 완성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될 때 역사는 장기적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미래의 목적을 찾아내는 작업은 역사가와 그가 속한 사회가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역사적 과제다. 과거를 연구하면서도 미래를 생각해내지 못한다면 역사의 범위를 다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역사 자체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품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설정된 목적이 역사의 진보와 평화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대화에서 미래의 목적을 찾아내는 것 이상으로 어떠한 미래를 발견하고 그려낼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다. 과거와 현재의 인과관계에서 어떤 미래를 제시할 수 있고 그리고 과연 어떤 미래의 목적을 추구할 것인가. 이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사회와 역사가들의 작업에 달려 있을 것이다. -82쪽

<세상을 읽는 눈> 시리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우리의 눈과 우리의 힘으로 바라보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경제‧정치‧문화‧사회 등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기본지식을 토대로 고민하고 분석하는 가운데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사고 틀과 ‘눈’을 가지게 된다. <세상을 읽는 눈> 시리즈는 각 분야에서 독자들의 눈을 틔워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쉽게 쓰인 입문서이다.

-『경제를 보는 눈』 홍은주 지음
-『정치를 보는 눈』 김영명 지음
-『통일을 보는 눈』 이종석 지음
-『노동을 보는 눈』 강수돌 지음
-『빈곤을 보는 눈』 신명호 지음
-『평화를 보는 눈』 정주진 지음
-『정의는 불온하다』(정의를 보는 눈) 김비환 지음
 
저자소개

이병철
연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독일현대사를 전공하고 ‘나치즘에 대한 저항과 전후 독일 재건의 연속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거문명화의 사회사: 1920년대 독일 노동자 주택의 부엌합리화를 중심으로」로 2010년 서양사학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으며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2015)를 번역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전북대학교, 홍익대학교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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