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의 마지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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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오는 10월 23일, 한미 FTA 4차 본협상이 제주에서 열린다. 지난 5월 협상이 개시된 이래, ‘2007년 3월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한다는 정부 일정대로라면 협상은 이제 반환점을 돌아서 골인지점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여당 의원토론회 ‘FTA’ 찬-반 정면충돌」(9.27)이니 「정부-농민단체 추석 FTA 찬반 맞대결」(10.1)이니 하는 기사들이 아직도 여전한 걸 보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지금껏 우리 사회의 논의가 한미 FTA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혹은 협상을 타결시키느냐 결렬시키느냐로 수렴되는 총론 중심적 관점에 붙들린 채 한 치의 진전도 얻지 못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협상의 초침은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단 우리의 본질적 이익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각론의 조건을 먼저 세워본 뒤 그걸 잣대로 한미 FTA의 성공과 실패를 따져보는 식의 접근이 더 생산적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각론에서 본질적 이익을 확보하지 못한 채 협상을 타결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각론이 유익한 협상을 외면한다면 이 역시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한미 FTA’와 ‘쌀’의 관계에 대한 결정적 오해
저자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미 FTA와 관련한 결정적(?) 오해 한 가지를 먼저 짚고 있다. ‘쌀 문제’가 마치 한미 양국이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일 고지라도 되는 양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는데(「“한미 FTA협상, 쌀 포함시 결렬될 수도”」 10월 7일자 워싱턴발 기사와 같은 미국측 반응), 이는 그야말로 보다 중요한 쟁점을 흐려놓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미국이 쌀 문제와 관련해 내놓을 수 있는 카드 4가지(본문 25-30쪽)가 모두 WTO 한국 쌀 양허표나 가트 조항 위반이 될 수밖에 없어 아예 법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하거나 비합리적일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게다가 미국은 2004년 WTO 협상의 결과만으로도 현재 충분히 해피하다고 말한다.
애당초 미국산 쌀은 1995년 WTO 출범 때부터 6년 동안 중국과 태국산 쌀에 밀려 한국의 국제 경쟁 입찰에서 단 한 톨도 낙찰받지 못했다. (…) 미국은 2004년에 진행한, WTO 한국 쌀 양허표 작성을 위한 협상에서 (…) 배정받은 것이 340만 석의 쌀이다. 미국으로서는 얼마나 애지중지할 것인가? 미국으로선 한국 쌀시장을 지금 개방시켜 이를 포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FTA에서 쌀을 쟁점으로 만드는 이유는 다른 본질적 이익을 챙기는 지렛대로 삼기 위해서일 뿐이다. 쌀은 한미 FTA의 본질적 쟁점이 아니다. (본문 31쪽)
협상의 마지노선이 되어야 할 4대 진지
비록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내어주면서 시작한 협상이지만 다음의 ‘4대 최후조건’을 지키고 얻어내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할 수만 있다면, 이는 공히 한미 양국의 균형적 거래이자 우리로서는 ‘한미 FTA의 성공’이란 표찰을 붙여도 됨직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첫째, 미국의 ‘투자자 국가제소 제도’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 것.
저자는 투자자 국가제소제를 탄생시킨 NAFTA에서 실제 벌어진 사례들을 통해, 일개인이나 일개 회사가 한 나라의 공공정책조차 일거에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 제도를 극력 끌어오려는 이유는, 이미 확고히 우위에 서 있는 경제력과 협상력을 바탕으로 한 ‘국제 중재 회부’를 무기로 앞세워 “미국 기업이 더 많은 수익과 새로운 사업을 한국의 공공영역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둘째, 식약 분야의 국민건강권에 관한 한 미국의 개입 통로를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는 수준으로 막아낼 것.
우리가 절대적 열세일 수밖에 없는 의약품 분야에서는, 미국 제약산업의 특허독점권이 지나치게 연장되는 것을 막고 국민건강보험의 약값 책정에서도 역시 미국 제약회사가 과도하게 개입할 통로를 차단하는 게 핵심 과제이다. 또한 식료자급률이 낮은 우리로서는, 적어도 식품안전 및 위생검역 기준에 관한 한 우리 환경에 맞는 독자적 기준을 설정하고 관리할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 이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셋째, 우리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장벽’을 WTO 플러스 원칙(본디 FTA란 WTO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WTO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유화와 개방을 상호 허락하는 것)에 걸맞게 낮출 것.
경쟁력 있는 한국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힘을 못 쓰는 건 ‘무관세 혜택’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덤핑 장벽’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에게 WTO 반덤핑협정을 위반하지 말아달라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의 요구로서 ‘제로잉’(zeroing), 자의적 ‘종료 재심’(sunset review), ‘관세 보조금’ 조치의 중단을 관철시켜야 한다. 더불어 WTO가 권고하고 있는 ‘더 낮은 반덤핑관세 기준’(반덤핑관세를 부과할 때, 덤핑행위로 생긴 국내 산업의 피해를 구제하기에 적정한 수준이라면 덤핑 마진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규정)의 채택도 요구해야 한다.
넷째, 미국에게 한국 인력의 전문직 및 일반직 취업비자를 교역 비중에 걸맞은 수준으로 받아낼 것.
미국은 세계 최대의 상품시장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최대의 고용시장이다. 그러나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해선 충분히 열려 있지만,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해서는 너무도 닫혀 있는 식의 불균형은 해소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미국의 7대 무역상대국이니만큼 그 교역 비중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 예컨대, 교역량이 우리의 1/3 수준인 호주에 주어지는 취업비자가 연간 1만500건이라면 우리는 그 3배에 해당하는 3만 건의 취업비자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협상팀부터 당장 읽어봐야 할 책
이 책의 장점은, 핵심 각론의 구체적 요목들을 일일이 따져 보여줌과 동시에 그 적절한 대안까지를 헤아려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개성공단 조항’이 들어가느냐 마느냐에 마치 한미 FTA의 성패가 갈리기라도 하는 듯 감정적으로 호소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임을 밝힌다.
개성공단의 성공은 지금의 5만 평 단계를 얼마나 착실히 끌어올려 1단계 사업인 100만 평 정도의 공단으로 안착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이상의 단계로 가려면, 어차피 북미관계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는 1단계 사업목표인 100만 평이라도 어떻게든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한국의 독자적 내수 시장이지 한미 FTA라고 보지 않는다. 한국의 내수 시장은 1단계 사업 규모를 흡수할 능력이 있으며, 한국의 이러한 독자적 능력이야말로 여러 대외환경의 변화에 좌우되지 않고 개성공단을 안착시킬 토대이다. (본문 182-183쪽)
따라서 한미 FTA에서 우리의 본질적 이익이 될 수 없는 ‘개성공단 조항’은 차라리 그냥 묻어버리고, 북미 수교 등의 근본적 정세 변화를 기다려 그때 직접 ‘북한산(産)’으로 미국에 수출하는 길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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