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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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인분이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미래를 선택하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많은 쓰레기를 버린다. 생활쓰레기에 국한해 보더라도, 예컨대 포장용 플라스틱(비닐, 페트병, 일회용 포장재 등) 사용량만도 연간 1인당 61㎏에 이르는데, 한국 전체로 따지면 연간 약 305만 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한 종류의 오물 쓰레기로, 그보다 더 많은 양을 쏟아내는 것도 있다. 바로 똥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대략 200g 정도의 똥을 눈다고 하는데, 1년으로 따지면 70㎏이 넘는다. 한국인 전체로는 연간 350만 톤의 똥이 쏟아지는 셈이다.(오줌까지 따지면 양은 더욱 늘어난다.)
쓰레기 처리의 원칙으로 흔히 3R 원칙이 알려져 있다. 가능한 배출을 줄이고(Reduce), 다시 쓸 수 있는 건 재사용하며(Reuse), 그래도 버려지는 것은 재활용해야(Recycle)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배설물은 이 세 원칙에서 모두 빗겨나 있다. 살아 있는 한 누구나 배출을 줄일 수 없고, 다시 사용할 수도 없고,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도 없다. 그래서 많은 비용과 수고를 들여 처리되어야 하는 게 똥의 현주소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이 책은 그러나 똥의 ‘가보지 않은 길’, 즉 똥을 폐기해야 할 더러운 오물이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다루는 길을 제시한다. 그리하면 하수는 오염도가 극적으로 개선되고, 하수처리는 보다 효율적으로 되며, 화석연료 사용마저 줄어들 수 있다. 황당한 공상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기술은 이미 구현돼 있다. 그것이 바로 비비시스템이다.
비전을 현실로 만들자
‘비비(BeeVi)시스템’은 벌(Bee)과 비전(Vision)의 첫 음절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벌이 꿀을 만들 듯이 사람 배설물을 유익한 에너지와 자원으로 만들자는 뜻이 담겼다. 배설물을 많은 물로써 처리한 뒤 최대한 먼 곳으로 보내야 하니,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이 낭비적 처리방식을 자원 순환의 생태적 방식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물론 우리 개개인은 지금도 배설물 처리에서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안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편리하고 청결하게 처리하면서 물을 아끼고 친환경 에너지도 만들 수 있다면, 하수처리장 건설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자기 집의 전기세와 가스요금도 아낄 수 있다면, 한번 새로운 시스템을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 더욱이 비비시스템은 지역 분산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과도한 중앙 집중을 벗어나고 지역 내 공동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저자는 이런 점에 착안해서 비비시스템에서 만들어내는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화폐, 일명 ‘똥본위화폐’를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아이디어도 내놓고 있다. 이는 별도의 후속권에서 다룰 계획이다.)
똥을 자원과 에너지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빌 게이츠는 자원 순환형 화장실을 개발하는 데 수백억을 투자하고 있고, 국제 구호단체인 옥스팜도 소변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화장실을 만들었다.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똥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의 수세식 화장실로부터 시작되는 하수처리 방식은 편리하긴 해도 생태적 관점에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비시스템의 새로운 시도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화장실에서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비비시스템은 환경에 해가 되는 어떤 쓰레기도 남기지 않고, 사람의 분뇨를 재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개발되었다. 똥은 ‘바이오연료’와 ‘퇴비’로, 오줌은 ‘액비’(액체 비료)로 만드는 게 골자다. 똥은 혐기성 미생물 방식으로 분해되며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그 잔여물로는 퇴비를 만든다. 휴지가 함께 버려져도 유기물이라 함께 분해되므로 사실상 쓰레기가 남지 않는다. 발생한 메탄가스(천연가스의 주성분)는 따로 모아져 연료로 사용되거나 발전용으로 활용되고, 이산화탄소는 미세조류를 배양하는 데 이용하게 된다. 이 미세조류로부터는 바이오디젤을 추출할 수 있다. 퇴비는 판매되거나 도시농업용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비비시스템은, 분뇨를 수세식 변기에서부터 하수관을 이용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 처리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부터 탈피한다. 비비시스템은 한 마을이나 일정한 지역 단위로 구성되는데, 각 가정에서 배출한 분뇨를 진공흡입관을 통해 한곳(이를테면 아파트의 지하)에 모아서 처리한다. 여기에는 혐기성 미생물 소화조와 가스저장탱크, 발전용 연료전지 등이 설치된다.
비비시스템은 진공흡입 방식을 사용하고 똥과 오줌을 분리해서 수거하기 때문에 특수한 변기(비비변기)를 이용하게 된다. 진공흡입을 하는 이유는 물이 많이 섞여 들어가면 혐기성 미생물의 분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비변기는 세척과 냄새 차단용으로 물을 극히 소량만 사용하고, 특수 코팅을 통해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기존 변기는 한 번 일을 볼 때마다 물을 10리터씩 사용하지만, 비비변기는 1리터로 10분의 1 수준이다. 물 낭비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구슬은 있다, 남는 건 꿰는 일
사실 비비시스템의 핵심은 이미 현실에서 다 사용되고 있는 기술들을 부분적으로 개선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조합한 데 있다. 사람의 분뇨는 아니지만 가축분뇨로 바이오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은 성공적으로 현실에 적용해온 바 있다. 예컨대 독일 윤데 마을에서는 2004년에 바이오에너지 프로젝트가 본격 출범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으며, 우리나라에도 가축분뇨로 가스와 전력을 생산하는 친환경에너지타운들이 몇 군데 있다.
바이오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분류되며, 악취 나는 유기성 폐기물 처리와 에너지 발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친환경적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메탄은 도시가스처럼 이용할 수도 있고, 연료전지에 투입해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메탄에서 수소를 분리시켜 수소연료를 만들 수도 있다. 모두 상용화된 기술이다.
미세조류를 길러 바이오디젤을 추출하는 것도 주목받는 기술이다. 주로 바다에서 미세조류를 기르는데, 건물 외벽에 유리 패널을 설치해 기르는 방식도 시도되고 있다. 이는 건물 녹화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진공흡입을 이용한 배설물 수거도 우리가 비행기 등에서 많이 봤듯 위생적으로 문제가 없다. 퇴비화는 전통적으로 해온 방식으로, 처리 과정에서 찌꺼기 성분을 완전히 부식시키면 냄새도 안 나는 유기농 비료를 만들 수 있다.
비비시스템은 이미 존재하는 여러 과학기술들을 이렇게 한데 꿰어 사람의 분뇨를 어떠한 오염도 낭비도 생기지 않게 생태순환의 흐름에 얹어낸 창안이라 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만의 구상일까? 아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생활형 연구소인 ‘과일집(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은 비비시스템을 실제로 구현해놓은 곳이다. 위에서 말한 모든 과정들이 이곳에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구슬을 꿰면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어쩌면 한 개의 섬, 한 아파트단지, 또는 소규모 자치단체, 하다못해 한 지역의 군부대라도 그 현실성을 직접 검토해보는 단계로 나아가보는 데 우리가 힘을 보태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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